귀의의 동기와 보리심: 쫑까빠 대사의 람림을 중심으로....

귀의의 동기

🌸 귀의의 동기, 세 가지 길

티베트 불교의 대스승 쫑까빠 대사(Je Tsongkhapa)는 《람림(菩提道次第論,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서 중생의 근기를 세 가지로 나누고, 그에 따라 귀의의 동기도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1. 하사도(下士道)

목적: 다음 생에 더 나은 곳에 태어나기 위함
특징: 삼악도(지옥·아귀·축생)를 피하고 삼선도(인간·아수라·천상)에 태어나기를 바람
한계: 천상계에 태어나도 선업이 다하면 다시 윤회 속 고통에 빠짐

2. 중사도(中士道)
목적: 육도윤회에서 벗어나 개인의 해탈을 얻기 위함
특징: 세속적 행복보다 해탈을 더 높게 봄
한계: 자기 자신만의 고통 해결에 머무름

3. 상사도(上士道)
목적: 자신의 해탈뿐 아니라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함
핵심: 보리심(상구보리 하화중생)
의미: 대승 보살승의 길
결국, 최상의 귀의 동기는 상사도의 보리심입니다.

🔷 티베트 불자와 한국 불자의 차이
티베트에서 “왜 불교를 믿나요?”라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답합니다.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고, 다른 중생들도 같은 길로 이끌기 위해서.”
즉, 상사도의 보리심을 이유로 말합니다.

반면 한국 불자님들께 같은 질문을 하면,
“가정이 평안해졌으면 해서요.”
“자녀 학업, 사업이 잘 되길 바랍니다.”
“건강이 회복되었으면 해서요.”
이처럼 하사도의 동기가 더 많이 나타납니다.

🔷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티베트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법회에 참석하며, 달라이 라마와 고승들의 설법에서 보리심에 대한 가르침을 귀가 따갑도록 듣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속에는 ‘귀의 = 보리심’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습니다.

🔷 불교는 ‘보리심’의 종교
우리는 학교에서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 불교는 자비의 종교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불교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불교는 보리심의 종교다.”
보리심은 단순한 자비심을 넘어, 지혜와 자비가 함께 어우러진 깨달음의 마음입니다.
불자는 단순히 세속적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과 함께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귀의해야 합니다.

🔷마무리
혹시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셨나요?
현세의 평안을 바라는 하사도의 마음이었나요?
개인의 해탈을 구하는 중사도의 마음이었나요?
아니면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상사도의 보리심이었나요?
이제 우리는 귀의의 최상 동기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하사도에서 중사도로, 그리고 보리심의 상사도로 나아가는 것—이것이 불자로서의 올바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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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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