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혜연선사 발원문의 대승보살사상과 수행관 고찰」
Ⅰ. 서론
한국 불교 전통에서 발원문은 단순한 기도의 문장이 아니라 수행자의 신행 지향과 사상적 지평을 집약한 종합적 텍스트로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특히 고려 후기 고승 이산 혜연선사(李山慧淵禪師)의 발원문은 삼보 귀의, 참회와 업장 소멸, 열반과 해탈의 추구, 대승보살도의 실천, 일체중생의 제도와 성불이라는 불교 전통의 정수를 함축하고 있다. 본 게시글은 이 발원문의 내용과 구조를 분석하여 그 안에 담긴 대승불교 보살사상의 특징과 수행관의 구체적 양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Ⅱ. 본론
1. 삼귀의(三歸依)와 일심참회(一心懺悔)
발원문의 서두는 시방삼세의 부처님, 팔만사천 법보, 보살과 성문승 등 삼보에 대한 지극한 귀의로 시작된다. 이는 대승불교 전통에서 수행의 출발점으로 삼는 삼귀의의 원형을 따른 것이다. 이어서 “참된 성품을 등지고 무명 속에 뛰어들어”라는 구절로 현상계에 대한 미혹과 업력(業力)에 대한 자각이 나타난다. 이러한 인식은 곧바로 업장(業障)의 참회로 연결되어 “여러 생에 지은 업장, 크고 작은 많은 허물”을 삼보 전에 일심으로 참회함을 발원한다. 이로써 발원자는 생사윤회의 고리를 끊고자 하는 원력을 드러낸다.
2. 해탈(解脫)과 열반(涅槃)의 지향
“고통 바다 헤어나서 열반 언덕 가사이다”라는 표현은 발원문의 핵심 목표가 생사고해에서의 해탈임을 명확히 한다. 이는 개인적 열반에 그치지 않고 “이 세상에 명과 복이 길이 창성하고”라는 서원으로 확장되며, 현세와 내세에 걸쳐 복덕과 지혜를 함께 구족하려는 대승적 관점을 보여준다.
3. 대승보살도의 실천: 육바라밀과 무진서원
본 발원문의 가장 큰 특징은 보살행의 구체적 실천항목이 제시된다는 점이다. ‘아이로서 출가하여’, ‘총명하고 진실하며’, ‘계율을 범치 않으며’, ‘청정한 범행을 닦는다’ 등 초기 수행자의 삶을 강조하면서도, 이는 보살의 길로 확장된다. ‘모든 생명을 사랑하여 이 목숨을 버리더라도 지성으로 보호하리’는 구절은 보살의 자비행(慈悲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발원자는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실천을 발원하며, 아승지겁(阿僧祇劫)을 뛰어넘는 보살행의 무진서원(無盡誓願)을 드러낸다. 이는 대승보살의 핵심 덕목이자 수행자의 실천목표로 자리매김된다.
4. 중생 제도와 보편적 구원관
관세음보살의 대자비(大慈悲)와 보현보살의 행원(行願)을 본받아 “시방세계 다니면서 많은 중생 건지올제”라 발원하며, 보살이 중생을 구제함에 있어 신통자재력(神通自在力)을 발휘함을 서원한다.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 중생 구제의 서원이 나타나고, 그 방식으로 “감로수로 변해지고 연꽃으로 화하여” 고통을 제거함을 발원한다.
더 나아가 원수, 친지, 이 세상 권속(眷屬)까지 모두 윤회를 벗어나게 하고, 유정(有情)·무정(無情) 모두가 불도에 들어 성불하기를 발원한다. 이는 대승불교의 ‘일체성불(一切成佛)’ 사상, 즉 법계 전체의 궁극적 청정과 구원을 지향하는 보편적 구원론을 보여준다.
5. 복덕과 지혜의 원만구족
발원문 곳곳에는 복덕(福德)과 지혜(智慧)의 원만(圓滿) 추구가 나타난다. 이는 보살이 개인적 해탈을 넘어 중생을 제도할 자격을 갖추기 위한 조건으로 설정되며, 신통자재력(神通自在力)의 발현과도 연결된다. 이는 수행의 결과가 육바라밀의 실천을 통해 쌓은 지혜와 복덕 자량의 쌍수(雙修) 결과임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대승불교의 관점을 따른 것이다.
Ⅲ. 결론
이산 혜연선사의 발원문은 고려 후기 한국불교의 대승보살사상이 집약된 대표적 문헌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삼보귀의와 참회를 출발점으로 하여 해탈과 열반, 대승보살행, 육바라밀 실천, 중생구제와 일체성불, 복덕과 지혜의 원만이라는 일련의 사상적 흐름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대승불교 보살도의 이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관세음보살과 보현보살의 실천적 이상을 수용하면서도 한국적 신행 형태인 발원의례의 틀 안에서 보살행의 방향성과 실천목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발원문은 수행의 지침서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향후 이러한 전통적인 발원문의 현대적 해석과 실천적 적용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제언하며 본 글을 마치고자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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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화, 『한국불교 발원의식 연구』,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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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표,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에 대한 고찰」, 『불교학보』, 제45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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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만, 『대승보살도의 철학적 이해』, 민족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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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연선사, 『이산 혜연선사 발원문』, 한국불교전서 제11권, 동국대학교출판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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